연남동은 경의중앙선-경의선 숲길공원을 중심으로 북측의 성산로(연희동), 동측의 연희로(동교동), 남측의 양화로(서교동), 서측의 월드컵북로(성산동)로 구획된 지역에 위치한다. 연남동의 서측 경계, 즉, 성산동에 면하는 영역은 서교동-망원동으로 이어져 한강 방면으로 연결되는 S자의 선형을 띄며 일정한 너비를 가지는 이질적인 도시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경계 조직은 연남동과 성산동을 나누며 비스듬히 도시를 관통하며 도시 체계와 반응하고 있다.
이러한 선형의 경계 조직은 연남동과 성산동의 권역을 구분짓는 분리선을 넘어, 미시적 동네 체계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연속적인 관계를 맺는 능동적인 켜로 기능한다. 이는 연남동 특유의 저층 저밀도 주거-근린상가 경관의 기반이 되는 동시에, 골목 중심의 생활 가로에 의한 네트워크 체계를 형성하며 도시의 주거-상업의 유기적인 프로그램의 배치를 보여주는 지리학적 토대가 된다.
![Fig1. 연남동-망원동 항공사진ㅡ선형의 도시조직[1]](attachment:ee875e22-894d-4e14-9398-17c4c1c35654:Fig1._%ED%95%AD%EA%B3%B5%EC%82%AC%EC%A7%84.jpg)
Fig1. 연남동-망원동 항공사진ㅡ선형의 도시조직[1]
| 년도 | 자료/사료 | 내용 | 비고 |
|---|---|---|---|
| 1924년 | 지적도 | 일제강점기 지적도 | |
| 1946년 | 미군정 지도 | 사천(구 홍제천) 지도 표기 | |
| 1947년 | 항공사진 | 항공사진에 의한 사천의 흔적 발견 / 연남동 487 주거지 미확인 | 최초의 열람 가능한 항공사진(기록물) |
| 1950-1960년 | 하천 정비에 의한 사천 복개(추정) 및 소멸 / 연남동 487 토지 분할 생성 기록 발견 / 주거지 형성 추정시기 | 사천의 자연발생적 혹은 치수 작업에 의한 소멸, 이후 주거지 형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 | |
| 1965-1973년 | 토지구획사업 | 성산지구 토지구획사업 시행 | |
| 1969-1972년 | 항공사진 | 연남동 487 주거지 형성 완료 발견 / 토지구획정리 완료된 필지부터 연남동 481의 주거지 형성 시작 | |
| 1972-1974년 | 항공사진 | 연남동 481 주거지 형성 완료 발견 / 토지구획사업 완료 | 연남동 481 건축물의 건축물대장 상 사용승인 완료 패턴 발견 시기 |
| 1983-1985년 | 특정건축물 | 특정건축물 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1차) | 주거용 무허가/위반 건축물 한시적 양성화 |
| 2011년 | 건축물대장 | 건축물대장 기초자료 정비 | |
| 2014년 | 특정건축물 | 특정건축물 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4차) | 주거용 무허가/위반 건축물 한시적 양성화 |
시간적 범위: 1924년 - 1950-1960년 촌락 형성 추정시기 - 1972-1974년 연남동 487 외 주거지 형성 완료 시점
공간적 범위: 사천 영역 중 연남동 487번지 일대에 위치하였던 주거지 영역
주요 키워드: 일제강점기, 광복 이후, 거시적 관점, 하천의 흔적, 복개, 기록의 부재, 도시의 자생적 발전, 자연발생적 터/집의 형성, 이형적(異形的) 집, 둔덕-제방-석축
연남동 487번지는 과거 홍제천의 지류였던 사천(沙川)의 물리적 흔적을 대지 형성의 유전자로 간주한다. 이 조직의 시간적 범위는 오늘날 1924년대 당시의 근대적 사료 기록이 남아있는 시점부터, 사천의 복개와 함께 자생적 주거지가 본격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1950~60년대를 가로지르며, 연남동 일대의 주거지 조성이 완료된 1974년도를 정점으로 오늘날에 이르는 통시적 기간을 기준으로 한다. 특히 당시 하천이라는 도시 기반 시설이자 공유재가 가졌던 사천 영역의 국가 계획적-혹은 자생적 요인에 의한 복개,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타났을 것으로 추측하는 복개부 소유권의 희미한 공백은 국가의 직접적인 계획이나 통제 없이 집단적이고 자연발생적인 터의 형성을 가능케 했던 핵심 배경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Fig2. 1924년 일제강점기 지적도[2]](attachment:683c737d-1add-48bd-982b-afc093d63b7a:Fig2._1924%EB%85%84_%EC%9D%BC%EC%A0%9C%EA%B0%95%EC%A0%90%EA%B8%B0_%EC%A7%80%EC%A0%81%EB%8F%84-DONE.jpg)
Fig2. 1924년 일제강점기 지적도[2]